건강검진 후 '혈당 관리'라는 숙제를 안게 되신 분들, 또는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해 식단 조절을 시작하신 분들이라면 '혈당 지수(GI)'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GI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감자나 수박은 피하고, 고구마나 현미밥을 챙겨 드시곤 하죠.
그런데 '혈당 부하 지수(GL)'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면서 혼란은 가중됩니다. "GI가 낮아도 GL이 높으면 소용없다"는 말도 들립니다. 도대체 GI와 GL은 무엇이 다르며, 우리는 둘 중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할까요?
오늘은 혈당 스파이크를 피하고 현명한 식단을 구성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GI(혈당 지수)와 GL(혈당 부하 지수)의 결정적인 차이점에 대해 명확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혈당 지수(GI): 탄수화물의 '질'을 따지는 속도계 🏎️
혈당 지수(Glycemic Index, GI)는 특정 식품에 포함된 탄수화물이 얼마나 '빠르게' 소화되어 혈당을 높이는지를 나타내는 속도의 개념입니다.
포도당 100g을 섭취했을 때의 혈당 상승 속도를 100으로 기준으로 삼고, 다른 식품 100g을 먹었을 때와 비교하여 수치화한 것입니다.
- GI가 높은 식품 (70 이상): 섭취 시 혈당이 빠르게 상승합니다. (예: 흰 빵, 쌀밥, 감자, 떡)
- GI가 중간 식품 (56~69): 보통 속도로 혈당이 상승합니다. (예: 통밀빵, 현미밥)
- GI가 낮은 식품 (55 이하): 섭취 시 혈당이 천천히 상승합니다. (예: 콩류, 유제품, 대부분의 채소)
GI가 높은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치솟고, 이를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과다 분비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혈당 스파이크'가 잦아지고, 췌장에 무리가 가며, 결국 인슐린 저항성이 생겨 당뇨병이나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GI 지수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습니다. 바로 '1회 섭취량'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혈당 부하 지수(GL): '양'까지 고려한 실제 혈당 영향력 🏋️
혈당 부하 지수(Glycemic Load, GL)는 GI 지수의 한계를 보완한 개념입니다. 식품 1회 섭취량을 기준으로 '실제로 우리 몸이 부담하는 혈당의 총량'을 나타냅니다.
즉, 탄수화물의 '질(GI, 속도)'뿐만 아니라 '양(1회 섭취량)'까지 함께 고려한 훨씬 더 현실적인 지표입니다.
GL 지수는 다음과 같이 계산합니다.
GL = (해당 식품의 GI 지수 × 1회 섭취량(g) 속 탄수화물 함량(g)) / 100
- GL이 높은 식품 (20 이상): 혈당 부하가 높음
- GL이 중간 식품 (11~19): 혈당 부하가 보통
- GL이 낮은 식품 (10 이하): 혈당 부하가 낮음
GI가 아무리 높아도 한 번에 먹는 양이 적거나, 그 식품의 탄수화물 밀도가 낮다면 실제 혈당에 미치는 영향(GL)은 미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GI가 중간이라도 한 번에 많은 양을 먹는다면(탄수화물 밀도가 높다면) GL은 매우 높아질 수 있습니다.

3. "수박은 억울하다!" : GI와 GL의 결정적 차이 (예시)
GI와 GL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수박'과 '쌀밥'입니다.
🍉 수박의 예: GI는 높지만 GL은 낮다
- 수박의 GI: 약 72 (높음)
- 수박 1회 섭취량(약 1조각, 100g)의 탄수화물: 약 6g
흔히 "수박은 달아서 GI가 높아 당뇨에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GI 수치만 보면 '고(高) GI' 식품이 맞습니다. 하지만 수박은 9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어, 100g을 먹어도 실제 섭취하는 탄수화물 양은 6g 정도로 매우 적습니다.
수박의 GL 계산: (GI 72 × 탄수화물 6g) / 100 = 4.32 (낮음)
결과적으로 수박의 GL 지수는 '4.32'로 매우 낮습니다. 즉, GI 지수만 보고 수박을 피할 필요 없이, 적당량(1~2조각) 섭취하는 것은 혈당에 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 쌀밥의 예: GI는 중간이지만 GL은 높다
- 쌀밥의 GI: 약 69.9 (중간)
- 쌀밥 1회 섭취량(약 1공기, 210g)의 탄수화물: 약 65g
쌀밥의 GI 지수는 수박보다 낮은 '중(中) GI' 식품에 속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쌀밥을 한 숟가락만 먹지 않고 '한 공기'를 먹습니다. 밥 한 공기에는 약 65g의 빽빽한 탄수화물이 들어있습니다.
쌀밥의 GL 계산: (GI 69.9 × 탄수화물 65g) / 100 = 45.4 (매우 높음)
결과적으로 쌀밥의 GL 지수는 '45.4'로 매우 높습니다. GI는 중간 수준이지만, 1회 섭취량에 탄수화물이 밀집되어 있어 실제 혈당 부하는 수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큽니다.

4. 💡 혈당 관리, 'GI'가 아닌 'GL'을 보라
결론은 명확합니다. 건강한 식단 관리를 위해서는 식품의 '속도(GI)'만 볼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먹는 '양(GL)'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 GI(혈당 지수): 식품 고유의 '빠르기' (참고용)
- GL(혈당 부하 지수): '1회 섭취량'을 반영한 '실제 혈당 부담' (핵심 관리 지표)
당뇨 환자나 다이어터라면, GI가 조금 높더라도 GL이 낮은 식품(수박, 당근 등)을 적절히 섭취하고, GI가 중간이라도 GL이 높은 식품(쌀밥, 빵, 떡, 감자 등)의 섭취량을 조절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앞으로는 식품을 선택할 때 'GI 지수가 낮으니 괜찮아'라고 안심하기보다, '내가 이 음식을 얼마나 먹을 것이며, 그로 인한 총 혈당 부하(GL)는 얼마일까?'를 고민하는 현명한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